《 늘 똑같은 꿈이다. 대여섯 살 된 아들을 등에 업고 있다. 아이가 제법 무거워 포대기를 자꾸 추스른다. 눈을 뜬 아이가 “엄마, 왜 자꾸 깨워”라며 투정을 부린다. 다시 업어주니 아이는 쌔근쌔근 잠이 든다. 아이 얼굴에 손을 뻗어 본다. 보드라운 살결이 손끝에 닿을 듯 말 듯…. 그 순간 꿈이 깬다. 애가 닳아 숨이 가빠진다. 눈가도, 베개도 촉촉이 젖어 있다. 2009년 8월 3일 새벽. ‘딩동!’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아드님이 ○○○ 씨 맞나요?” “네, 맞는데요.” “집에 계시는지 확인 좀 해주시겠습니까?” 아이 방문을 열어봤다. 텅 비어 있었다. 화장실에도, 거실에도 흔적이 없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었다. 경찰은 8층 복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선 끝에는 하얀 천이 보였다. 》
○ 못난 부모 탓에 우울증 앓던 외아들이…
“아드님이 투신하신 것 같습니다.”
주위가 빙글빙글 돌았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하얀 천을 들춰 보았다. 아이가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시신은 깨끗했다. 흘러내린 코피 한 줄이 땅으로 떨어졌을 때의 충격을 증명할 뿐이었다. 혹시 그냥 잠든 것 아닌가. “○○야!” 흔들어 깨워 봤으나 대답이 없었다.
전날은 바로 엄마의 생일이었다. 조촐한 생일파티가 끝난 뒤 아들은 “엄마, 우리 영화 보러 가요. 매트릭스요. 부활의 메시지가 담겼다던데요”라고 했다.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 내일 가자.”
마지막 대화였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혹시 영화를 봤더라면 소중한 아이는 엄마 곁에 있었을까.
“CCTV를 보시겠습니까?”
차마 볼 수 없었다. 마지막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장례식은 하루 만에 끝났다. 시댁에서 흉사(凶事)니 서두르자고 했다. 미처 슬픔을 느낄 틈도 없었다. 스물두 살 외아들은 그렇게 곁을 떠났다. 박인순 씨(58)는 그 후 아이 업어주는 꿈을 자주 꾼다.
종종 엄마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가자던 자상한 아들이었다. 교보문고에서 두세 시간은 거뜬히 앉아 있다 오는 책벌레이기도 했다. 변변한 과외 한번 못 시켰지만 명문대에 진학했다. 영리하고 따뜻한 아이였다. 모진 결심을 하리라고는 짐작조차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울증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자살을 기도했다. 팔목에는 칼로 그은 흉터가 남았다. 상담을 받으면 호전되다가 상담이 끝나면 다시 나빠졌다. 어린 나이에 정신과를 다니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극복해 낼 것이란 믿음도 컸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 별거를 시작했다.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 수치심, 한편으로는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기까지 3년이 걸렸다. 엄마는 자신의 상처가 너무 아파 미처 아이의 상처를 돌보지 못했다.
동네에 별거한다는 소문이 나 이사를 갔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고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아 견디기 어려웠다. 아이는 부산 아빠 집으로 보내졌다가 서울 엄마 집으로 오가기를 반복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여섯 번 이사했다.
“아이가 산 날이 8000일 정도예요. 뽑았다, 심었다, 뽑았다, 심었다…. 한 번도 뿌리를 못 내리고 살았던 거예요. 뿌리가 없으니 시들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 그날 이후 살아도 산 게 아닌 死線의 날들
이혼한 뒤 양육비 한 푼 못 받았다. 당장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막막했다. 다행히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신학대에도 진학했다. 몰두할 일이 있어야 분노를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한 길이었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晝耕夜讀). 하루 3, 4시간 자면서 버텼다. 늦은 밤이 돼서야 집에 돌아가 아이에게 저녁을 먹였다. 아침 일찍 학교에 보낸 뒤 집을 나왔다. 5년 넘게 아이는 혼자 지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신이 들었을 때 아이의 병은 이미 깊어졌다. 군에 입대했다가 사흘 만에 되돌아왔다. 팔목의 상처를 들켰고 우울증 진단이 내려졌다. 대학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마다 징병검사를 다시 받았다. 완치 판정을 받아 입대하든지, 면제 판정을 받든지 해야 하는데 2년간 입대만 자꾸 미뤄졌다. 학교를 휴학한 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 나 이제 좋아진 것 같아. 평생 약을 먹을 순 없잖아요.”
약을 끊은 지 두 달쯤 지났을까. 아이는 집 앞에서 뛰어내렸다. 우울증이 그렇게 무서운 병인 줄 몰랐다. 꾸준히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가슴을 쳤다. 병의 원인이 부부 갈등은 아니었을까 싶어 또 가슴을 쳤다. 장례식장에서 아이 아버지를 만났다. 회한으로 흐느끼는 그를 보고 처음으로 ‘가엾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비였고 박 씨는 어미일 뿐이었다.
가족의 죽음.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슬픔이다. 그러나 자살은 여느 죽음과 다르다. 고통의 원인이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죄책감, 왜 나를 버렸을까 하는 분노, 떳떳하지 못한 죽음이라는 수치심 등 온갖 감정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먼저 떠난 고인을 따라가는 가족도 많다.
“1년간 누워서 울기만 했어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었죠. 채집당한 곤충이 산 채로 핀에 꽂혀 있는 듯한 아픔이었어요. 아무도 이 핀을 뽑아주지 못하죠.”
먹고 자는 것조차 잊었다. 무기력증에 빠졌다. 아들이 뛰어내릴 때 느꼈을 두려움부터 몸이 부서지는 통증까지 하나하나 느껴지자 숨이 조여 왔다. “오죽했으면…” 하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 따뜻한 시선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불효했다. 그래도 살아야지” 하는 위로의 말은 비수가 돼 꽂혔다. 자연스럽게 가족도, 친구도 멀어졌다. 화장을 하는 것도, 옷을 차려 입는 것도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TV를 보며 웃다가도 ‘내가 이래도 되나’ 싶어 순식간에 마음이 어두워진다. 박 씨는 남 앞에서 밝은 표정을 짓는 것을 ‘가면 쓴다’고 표현한다.
아들의 1주기. 아이가 떠난 날보다 고통스러웠다.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일이면서 아들의 기일인 날. 그리고 몸에서 혹을 발견한 날이기도 했다. 림프샘에 종양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덤덤했다.
“간단한 수술이면 됩니다.”
의사의 말에 ‘차라리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외쳤다.
○ 무너지기 직전 만난 동병상련 사람들그 즈음부터 ‘생명의 전화’ 자살자 유가족 자조모임에 참여했다. 7주간 매주 자살 유가족끼리 만나는 ‘희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주변에서는 다들 심장마비인 줄 알지만….” “결국 아내가 딸을 따라갔어요.”
이런 말들이 오갔지만 불편하거나 숨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고 편안했다. 그냥 손을 마주잡고 안아주기만 해도 위로가 됐다. 심리상담보다 더 힘이 됐다. 상담소에 가면 심리상담사가 오히려 당황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같은 프로그램을 세 번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자살이 일어나면 그 사람의 죽음에만 관심이 쏠려요. 남은 사람의 삶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고통을 견디지 못해 십수 년이 지나 고인을 따라가는 사람도 많죠.”
박 씨는 지난해 4월부터 직접 유가족 상담사로 나섰다. 일주일에 사흘 동안 반나절씩 ‘생명의 전화’에서 전화 상담을 한다. 유가족 모임인 한국자살자유가족대표도 맡고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회복이 가장 더디다. 내가 아니면 누가 그 마음을 알까. 지난해 A대학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했다. 그 가운데 한 아이의 엄마가 흐느끼며 전화를 걸어왔다.
“외동딸이 갔어요. 왜 그랬을까요?”
아픔을 감추려는 남편은 ‘그만하지’라며 호통을 친다고 했다. 아내는 벌써 잊었나 싶어 서러워진다. 항해하던 배가 부서진 것과 같다. 남은 가족은 난파된 배 조각에 매달려 위태위태하다.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가 너무 원망스러워요.”
아내를 잃은 남편은 갑자기 생계와 육아라는 현실적인 짐을 떠안게 된다. 가족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너 때문에 내 아이가 갔다’는 처가의 비난에 가족과도 멀어진다. 수화기 넘어 “아이를 씻기고 먹이는 일조차 잘 안 돼요. 아빠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젖은 목소리가 들린다.
마음에 ‘주홍글씨’가 새겨진 사람들이다. 특히 마지막 모습을 본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한다. 상담 이후 꾸준히 연락해 오는 유가족이 80명 정도다. 하루 2, 3통씩 유가족이 전화를 걸어온다.
“폭우가 쏟아진 뒤 물에 잠긴 길을 건너봤어요?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허리를 감고 걸어갑니다. 힘들지만 유가족 역시 함께 밖으로 나와야 삽니다. 혼자서는 못 견딥니다.”
○ 그들을 살리며 살아야 할 이유 찾았다자살 유가족에 대한 시선도 바뀌었으면 한다. 한마디, 한마디 눈물을 꾹꾹 눌러가며 기자에게 어렵게 속내를 털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자살 유가족은 대표적인 자살 고위험군. 예방이 필요하지만 상담비용이 높고 정보가 부족해 방치되는 사례가 많다. 자살이 발생했을 때 병원, 경찰서 등이 유가족을 자조모임에 바로 연결해 주면 이차적인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박 씨는 접었던 공부를 3월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가족을 잃은 사람끼리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싶어 사회복지학을 공부한다. 아이가 못다 이룬 꿈이기도 하다.
오늘 밤에도 아이를 업어주는 꿈을 꿀지 모른다. 꿈에서라도 다시 한 번 아들을 만져볼 수 있다면…. 아이에게 하고픈 이야기도 있다.
‘네가 엄마에게 남겨준 살아야 할 이유를 이제야 찾았다고….’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사회] 2012-02-14 09:30:00
올해 자살예방대책 3대분야 12개 중점과제 추진
충남도가 올해부터 자살 시도자에 대해 응급 의료비를 지원하고 유가족 지원 프로그램을 개설 운영한다.
또 자살 실태조사 및 자살 통계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자살 예방 기초자료로 활용한다.
도는 14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12 자살 예방대책'을 마련하고 추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도는 자살 예방을 위해 ▲자살 예방 인프라 및 네트워크 구축 ▲고위험군 조기 개입 및 위기관리 ▲자살 예방 교육 및 홍보 등 3대분야 12개 중점과제를 선정했다.
먼저 '자살 예방 인프라 및 네트워크 구축' 분야에는 생명존중 자살예방 조례 제정, 시ㆍ군 지역정신보건센터 기능 강화, 자살 실태조사 및 자살 통계 DB구축, 생명사랑 지킴이를 자살 준전문가로 육성, 생명사랑 행복마을 육성 등이 담겨 있다.
자살예방 조례는 지난 3일 도의회 본의회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자살 실태조사 및 자살 통계 DB 구축을 위해선 연말까지 5천만원이 투입된다.
'고위험군 조기개입 및 위기관리' 분야는 우울증 선별검사 및 치료비 지원, 자살 예방 상담 전화 운영ㆍ거버넌스 구축, 자살시도자 및 유가족 지원, 노인 외로움 해소 및 노후 생활지원, 건강관리 등으로 짜여 있다.
자살 시도자에 대한 지원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살 시도자 가운데 사후관리에 동의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하며, 총 1천만원을 투입해 응급 이송비와 외래 진료비 등을 지원하게 된다.
자살자 유가족의 심리적 안정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전문가 초빙 심리상담과 모임체 운영 지원 등으로, 올해 천안시 자살예방센터에서 시범운영된 뒤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이밖에 '자살 예방 교육 및 홍보' 분야는 자살 예방 전문가 양성 및 현장 실무자 교육, 아동 청소년 생명존중 교육 및 정신건강 관리, 생명존중 자살 예방 홍보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강병국 도 복지보건국장은 "자살 예방은 정책적 지속성이 가장 중요한 만큼 복지보건국의 핵심과제로 선정해 자살 예방에 관한 법, 제도, 시스템 등을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생명존중에 대한 인식 개선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10년 도내 자살 사망자 수는 914명으로 2009년(928명)에 비해 소폭 하락했지만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는 44.6명으로 전국 16개 시ㆍ도 가운데 가장 많았다. 전국 평균은 31.2명이었다.
(대전=연합뉴스)
기사입력 2012-02-12 07:33:00 기사수정 2012-02-12 07:33:43
러시아, 청소년 자살 열풍으로 충격
2주 동안 7명 자살…15~19세대 자살자수 세계1위
러시아에서 최근 청소년들의 자살 열풍이 번지면서 온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최근 2주 동안에만 러시아 전역에서 6건의 청소년 자살 사건이 발생해 7명이 숨졌다.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11일 오전 10시 30분(현지시간)께 15세 여중생이 모스크바 시내 동쪽 '노보기례예프스카야' 거리에 있는 자신의 24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숨진 소녀의 할아버지는 손녀가 아버지와 다투고 나서 학교에 간다고 나간 뒤 23층과 24층 사이의 복도 창문을 통해 아래로 뛰어내린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소녀는 3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재혼한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전에는 시베리아 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12세 소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을 매 숨졌고, 9일에는 극동 아무르주(州)에서 13세 소년이 성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부모가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데 불만을 품고 목을 매 자살했다.
같은 날 저녁 모스크바 '바르샤프스코예샤셰'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는 15세 소년이 아버지와 언쟁 끝에 14층에서 뛰어내려 즉사했다. 이 청소년은 이날 급우들의 휴대전화를 훔친 혐의로 학교 당국이 아버지를 불러 비행을 지적한 문제로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고 난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아파트 창문을 통해 아래로 뛰어내렸다.
7일 저녁에는 모스크바 인근 모스크바주 로브냐시(市)에서 14세 소녀 2명이 16층 아파트 지붕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두 소녀는 서로 손을 맞잡고 아파트 지붕에서 몸을 던졌다. 숨진 한 소녀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2주 동안 수업을 빠져 야단을 맞을 것이 두려워 자살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대통령실 산하 어린이 권리 담당관 파벨 아스타호프는 "매년 러시아에서 1천 500여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살하고 있으며, 미수에 그치는 자살자 수는 그보다 3~4배는 많다"며 국가 차원의 대책을 촉구했다. 그는 15~19세 연령대 청소년 자살자수는 러시아가 세계 1위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가족 간 갈등과 애정 문제, 심리적 질병 등의 이유로 자살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기사입력 2012-02-07 15:29:00 기사수정 2012-02-07 15:29:00
자살로 자녀잃은 부모도 ‘자살 고위험군’
"죄책감에 자기비난 심화"..사회적 대책 절실
"어미가 뒷바라지 못해주니까 카드 쓰고, 그 카드빚 때문에 집 경매 들어올까 봐 죽었어. 못난 어미가 죽인 거지. 혼자서 얼마나 힘이 들어 그렇게 갔을까 싶어. 어미가 죄인이지."
70대 여성 A씨의 아들(35)은 2009년 취업난과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독극물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아들을 먼저 보냈다는 자책감에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밤이 되면 어떻게 또 이 밤을 보내야 싶어. 청심환 먹고 조금씩 자고 그랬어. 집안 어디서 아들 이름만 보여도 가슴이 벌벌 떨려"라며 괴로워했다.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가득 씨는 최근 발표한 박사논문 '자살로 자녀를 잃은 부모의 경험-참척(慘慽) 고통과 화해'에서 "연구 대상 12명이 모두 죄책감과 수치감을 느끼면서 자기비난을 심화해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고 7일 밝혔다.
김씨는 2010년 4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자살자 부모 12명을 만나 2∼6차례에 걸쳐 심층 인터뷰했다.
자살로 자녀를 잃은 부모는 매일같이 '악몽'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넋이 나감 ▲포장된 수치심 ▲참척 죄인 ▲유형의 땅, 정지된 시간 ▲위로받고 싶은 고통 ▲반쯤 꿰맨 상처로 살아지는 날들 등을 경험했다.
참척(慘慽)은 자식을 먼저 보냈다는 말로 소설가 박완서는 그 고통을 "자식을 앞세우고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어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고 표현했다.
자살자 가족들은 또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듯한 충격, 자살원인 둘러대기, 쏟아지는 비난, 자살에 대한 유혹, 남겨진 자식에 대한 책임감과 두려움 등을 경험했다.
심지어 한 어머니는 성공적인 자살을 위해 목맴, 투신, 자해 등의 자살 방법을 상세히 공부했다.
이들은 정신적 고통은 물론 수면부족과 호흡곤란, 가슴통증 같은 신체적인 증상을 겪고 있다.
실제 응답자 12명 중 2명은 자녀가 자살한 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2개월과 1년 안에 숨졌다.
김씨는 "자살자의 부모는 최고의 자살 위험군이며 대부분의 유족은 가족의 자살 사실을 비밀로 묻어두고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살고 있다"면서 "정신과적 상담서비스 제공 등 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2010년 국내 자살자는 1만5천566명으로 하루 평균 4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기사입력 2012-02-04 03:00:00 기사수정 2012-02-04 19:44:29
“연탄 피우고 죽을래“ 할아버지 살린 한마디
‘자살 1위 지자체’ 오명 씻은 서울 노원구의 정성
통장 677명이 홀몸노인 말벗 돼주는 도우미
고독 달래주니 자살자 수 2년새 180→128명
2일 상계2동 11통장 백동진 씨가 홀몸노인을 찾아 말을 건네고 있다. 서울 노원구 제공
“요즘 통 외출을 안 하시던데, 의욕도 없고 밥맛도 없고 그러신가요?”
“어르신, 슈퍼 아저씨한테 죽고 싶다고 그랬다면서요. 할머니 돌아가셔서 그렇죠?”
서울 노원구 상계2동 11통장 백동진 씨(43)는 지난해 3, 4월 동네에 사는 홀몸노인 44명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우울증 및 자살 선별검사인 ‘마음건강평가’ 설문지를 손에 꼭 쥐고서다. 설문지에는 결혼상태, 생활수준, 학력부터 현재 생활에 만족하는지,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자살 시도를 해봤는지까지 사적인 질문이 담겨 있었다. 낯선 사람이 집에 찾아가 묻기는 어렵지만 동네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백 씨는 온갖 사정을 에둘러가며 모두 물어 알아낼 수 있었다.
“알고 있는 답은 대신 적었고요. ‘늙으면 일찍 죽어야지’ 하실 때 ‘왜 그러시냐’고 슬쩍 물어보면 ‘자식이 죽었다, 친구가 죽었다, 나도 따라 가야지’ 하는 이야기가 술술 나옵니다.”
홀몸노인은 누가 찾아만 와도 반가워한다. 당초 30분이면 모두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일이 잦았다. 백 씨는 “누구나 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가족과 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에 아무도 없는 어르신들이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 [채널A 영상] “어머니, 아들 왔어요” 독거노인 지키는 경찰 백 씨는 노원구가 지정한 보건복지도우미다. 노원구에는 백 씨 같은 통장이 677명이나 된다. 노원구는 이들을 통해 2010년 만 65세 이상 홀몸노인 1만1474명을 대상으로 생활실태는 물론이고 정신건강 조사까지 했다.
동아일보 DB
노원구가 대대적으로 우울증 검사를 한 데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노원구는 2009년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자살자가 180명으로 1위였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9.3명으로 자살률이 가장 낮은 서초구(15.4명)의 갑절에 육박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자살 통계를 분석해 보니 빈곤과 고독이 원인이었다.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정책이 시행돼도 주변의 관심과 배려가 없으면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자살자 가운데 74.2%는 무직과 일용직이다. 아예 생계곤란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12.6%에 이르렀다. 노인 자살은 전체 자살의 28%를 차지했다.
▼ 자살 시도 70대 “돕는 사람 이렇게 많으니 살아야지…” ▼2010년 노원구는 전국 최초로 생명존중문화 조성 및 자살예방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해 이 조례에 따라 ‘마음건강영향평가’를 받은 사람은 홀몸노인을 포함해 기초생활수급자, 실직자, 청소년 등 총 5만여 명에 이른다. 검사 결과에 따라 우울증 위험이 있는 홀몸노인 1324명은 집중상담 서비스를 받았다. 이 때문에 노원정신보건센터 상담건수가 2010년 58건에서 지난해 2287건으로 폭증했다. 자살 시도자와 자살 유가족 등 고위험군은 불교 천주교 기독교에서 추천받은 ‘생명지킴이’ 400명이 따로 관리했다.
세 번이나 수면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했던 정모 씨(74). 지난해 4월 다시 자살 생각이 떠나지 않자 상담번호를 눌렀다. 그의 첫마디는 “연탄 피우고 확 죽어버리고 싶다”였다. 정 씨는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했다. 갈비집, 횟집이 번창할 때는 오순도순 가정도 꾸렸다. 그러나 부인이 외도로 집을 나간 뒤 인생이 무너졌다. 빚을 지면서 자녀 둘의 학비를 댔지만 지금은 연락도 닿지 않는다. 배신감 억울함 그리고 가족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상태였다. 노원정신보건센터는 매주 상담과 검사를 했다. 인근 복지관에서 매일 전화를 거는 말벗서비스를 제공했다. 푸드마켓에서는 밑반찬을 지원했다. 주민센터는 노인일자리 사업을 알선했다. 정 씨는 지금 “저를 돕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만큼 회복됐다.
성과는 숫자로 확인된다. 자살자가 2009년 180명에서 2011년 128명으로 줄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도 29.3명에서 2011년 21.2명으로 27.6% 떨어졌다. 노원구는 자살예방사업을 확대해 2017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1.2명까지 낮출 꿈에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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